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로이 전쟁 (문단 편집) === 규모 추측하기 === 일리아스의 494행에서 759행까지 그리스 측의 전함과 병력을 설명하는데 언급되는 검은 배 즉 [[전함]]을 종합하면 1184척이다. 그리고 그리스군의 병력에 대해서는 일리아스에서는 그리스 함대중 보이티아에서 배마다 120명씩 타고 있는 함대가 15척이고 필록테테스가 지휘하는 배마다 50명씩 타고 있는 함대가 7척이 라고만 묘사할뿐 나머지 함대의 병력에 대한 묘사는 일절 없다. 아마 120명은 배 한척당 가장 많은 병력이 탄 숫자이고 50명은 배 한척당 탑승인원이 가장 적은 최소치일 것이다. 일리아스에서는 정확히 그리스군의 병력이 얼마라고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군의 배가 대략 1,200척이고 배 한척당 최소 50명 이상 승선했다고만 계산해도 무려 최소 6만 이상의 대군이 된다. 이 정도 수치면 당시 패권국가인 히타이트가 [[카데시 전투]]에 동원한 규모보다도 많기 때문에 당연히 고대의 과장법일 것이고 그럼 다른 방식으로의 계산을 해보아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직접적으로 탑승 인원을 명시해 둔 선박의 대표격은 다름 아닌 아르고 호이다.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가져오기 위해 제작한 이 선박은 언급에 따르면 그 어떤 배보다 크고 강했다. 그런데 이 선박의 탑승 인원은 50명이었다. 가장 큰 배의 탑승인원이 50명이니 이 50명은 말그대로 최대 탑승 가능한 인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로이 전쟁 당시 지휘관들이 탄 대장선의 크기는 그 정도 크기였겠지만 다른 병사들이 타고 있는 배는 그 보다 작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선박의 수도 재계산할 필요가 있다. 1184척은 척 봐도 과장이다.[* 사실 목록에 나오는 배들의 수는 척 봐도 작위적이라서 동양권에서 천자국을 만승지국 제후국을 천승지국이라 하듯이 예우 내지 전투력 측정기의 역할로 보인다. 호메로스 시대 이미 후기 청동기 그리스 문명은 철저히 파괴된 상태인데도 이 부분은 오히려 후대의 영향이나 시인 자신의 사견이 없는듯 현대에 발굴된 규모와 비슷하다. 뮈케나이, 아르고스, 퓔로스가 약 100여척, 나머지 군소 도시국가는 일관적으로 40척인 식이다. 예외로 전화로 파괴된 테바이가 보이오티아군을 다 합쳐도 50척에 머물고 케팔레니아, 쉬메, 살라미스처럼 작은 섬은 십여 척에 머문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안타깝지만 없다. 따라서 선박의 수는 병력부터 계산한 다음 맞춰 보아야 한다. 일단 트로이 인구는 대략 5,000~7,500 명인 대략 6,000명 정도의 도시국가였고, 그렇기 때문에 트로이 내에서 스스로 동원할수 있는 규모는 최대 500명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트로이 인구의 3할이 동원되었다는 말이 있으나 청동기 시대보다 훨씬 후대에도 전체 인구의 3할을 동원하는게 불가능했는데 그 시대에 전체 인구의 3할은 너무 지나치게 많다. 상식적으로 인구의 3할이나 군대로 돌리면 노동력 부족으로 농사를 짓는 것도 힘들 것이다.] 그럼 최대 미케네 측이 동원할수 있는 병력은 그것에 대략 한 10배가 넘는 5,000명 정도일 것이고 트로이 측도 동맹군들의 군대까지 합치면 병력면에서 그정도까지의 열세는 아니였을 것이다. 사실 옛날에는 실제 숫자에다가 대략 0하나 덧붙이는 뻥튀기가 흔했기 때문에 어쩌면 그리스측 선박 숫자도 대략 120척이었을 수도 있다. 그럼 배 하나당 대략 40명 남짓 정도가 탔다고 계산하면 대략 5,000에 얼추 들어맞는다. 이 정도면 [[히타이트]]와 [[이집트]]가 싸운 청동기 시대 최대의 전투인 [[카데시 전투]]에서 히타이트와 이집트 측이 동원한 병력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미케네 문명 자체가 영토부터 전성기 고대 히타이트와 이집트의 영토보다 훨씬 작고 그 작은 영토마저도 그때당시 굉장히 부유한 아나톨리아 지역을 지배했던 히타이트와 아이귑토스 지역을 지배했던 이집트에 비하면 굉장히 척박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히타이트와 이집트에 비해 국력이 훨씬 약했던 미케네 입장에서는 5,000명 정도도 충분히 대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케네 측이 건재했을 때 병력을 최대치로 잡았을때 수치이며 트로이 전쟁시기가 bc 1250~1180년도로 추측되는 만큼 만약 전쟁이 bc 1200년도 이후에 터졌다면 이때는 미케네가 몰락을 하고 있을 시기임으로 미네케 전체가 연합해서 트로이 원정을 갔단는건 훗날 호메로스의 과장일 것이다. 그럼 실제로는 미케네 시대말당시 국가혼란기 시기에 국내에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미케네 출신 해적들이 폭증을 하였고 미케네 여러 도시국가들이 몰락을 하자 미케네 여러 도시국가의 왕들까지 생계를 위해 해적질에 참여하면서 이렇게 폭증한 미케네 해적들이 미케네와 근처에 있던 트로이를 비롯한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가 지역을 대규모로 약탈을 하였고 이게 사실상 트로이 전쟁의 원형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크다. (실제 통일신라 말기당시 신라구들이 폭증을 해서 대규모로 일본 큐슈 지역을 대규모로 약탈을 자행했고 일본 남북조 시대당시 일본 해적들이 폭증을 해서 한반도 전체를 대규모로 약탈을 해 초토화로 만든 것처럼 실제로 국가가 혼란기 시대당시 해적들이 폭증을 한 것처럼 국가혼란기 시대당시 그런 정치, 경제적 혼란으로 대규모의 해적들이 폭증하는건 실제 역사에서도 여러번 있었다.) 만약에 이러한 경우일 경우 미케네측의 선박들은 약탈하기 쉽도록 배 한척당 탑승인원이 20명정도의 소형함선일 것이고 배 규모도 최대 100척이라고 가정할 경우 미케네 측의 병력은 최대 2000명 정도일 것이다.(사실 이정도 병력만 해도 당시 해적들의 규모치고는 굉장히 큰 규모고 트로이 측의 스스로 동원할수 있는 병력에 비해 5배에 가까이 달하는 대군이다.) 이집트가 지원해 주었을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일리아스에서 그 어디에도 이집트의 대규모 지원병에 대한 어떠한 언급조차 없다. 호메로스는 그리스 연합군의 도시국가들과 트로이 동맹국들까지 일일이 나열할 정도로 전쟁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이집트가 나름 지원병을 보냈다면 그 규모도 적지 않았을 건데 그 부분에 대한 일절 언급이 없다는건 이집트가 전쟁에 참여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 당시 히타이트도 국가 말기 상태라서 트로이 측에 그렇게 대규모 지원을 해주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애초에 미케네도 트로이가 히타이트의 봉신국이라 히타이트의 눈치를 살피다가 히타이트가 내전으로 국력이 약해져 정신없을 때 트로이를 침공했을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